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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명문고 촬영지 투어 (영화 크루얼 인텐션)

by 아이디어팝 2025. 5. 12.

 

크루얼 인텐션(Cruel Intentions)
크루얼 인텐션(Cruel Intentions)

 

사실, 크루얼 인텐션(Cruel Intentions)이라는 영화는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1999년, 청춘 영화의 전형을 완전히 뒤흔들어버린 문제작이자 명작. 고급스럽고 나른하고 위험했던 그 감정선은, 이상하게도 지금 다시 봐도 매력적입니다.
영화의 주요 무대는 뉴욕 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는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권력의 전시장이고, 은밀한 감정이 흘러넘치는 미로 같았습니다.
이번 여행은 바로 그 감정이 남아있는 실제 공간들, 촬영지들을 찾아 떠나는 여정입니다. 무심한 듯 거닐지만, 마음속에서는 영화의 잔상이 겹쳐지는 그 이상한 여행. 저는 그 길을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영화 속 그 학교, 실제로는 어디일까?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등학교. 클래식한 외관과 무게감 있는 교정, 고딕풍 건축물의 압도적인 존재감.
처음에는 세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뉴욕 외곽, 티어리타운(Tarrytown)에 위치한 피스 대학교 구 캠퍼스(Pace University Former Campus)에서 촬영되었습니다.
현재는 교육시설로 사용되고 있으며 외부인의 출입은 제한되지만, 캠퍼스 외곽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영화 속 풍경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걷는 내내, 세바스찬과 캐서린이 흘기듯 쳐다보던 그 느낌이 떠오릅니다. 높은 나무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회색 석조 건물 외벽은 낡았지만 품격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이 주는 정적은, 묘하게 긴장을 주는 감정의 배경이 됩니다.

맨해튼 쪽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촬영지가 있습니다. 바로 캐서린의 저택 외관.
어퍼이스트사이드 5번가, 센트럴파크가 바로 옆에 있는 고급 타운하우스입니다. 붉은 벽돌에 철제 게이트, 과하게 꾸미지 않은 클래식한 외장. 이곳은 그 자체로 완벽한 세트처럼 보였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상류사회의 거만함과 고독이 녹아든 공간이었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조용하고 기품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맨해튼 다운타운, 브루클린 하이츠, 첼시.
세바스찬의 차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던 길들, 캐서린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등장하던 골목. 그런 평범한 공간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상징’으로 변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거창하지 않아서 더 감정이 잘 묻어나는 장소들이죠.

촬영지 주변에서 쉬어가기 좋은 공간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여행은 촬영지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화의 ‘기분’을 온전히 체험하려면, 그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장소에서 한숨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촬영지 근처에 있는 몇 곳의 카페와 식당들을 들렀습니다. 각각의 장소에서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티어리타운의 Coffee Labs Roasters. 작고 소박한 카페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들어서는 순간, 세바스찬이 테이블 끝에 앉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무 테이블, 무심한 조명, 바리스타의 굵은 목소리. 브런치로 나오는 오픈 샌드위치와 라떼 한 잔이 이 공간을 완성시켜 줍니다.

뉴욕 시내로 들어오면, Café Sabarsky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뇌외갤러리 안에 위치한 이 오스트리아풍 카페는 분위기만으로도 영화 한 편을 찍을 수 있을 만큼 완벽합니다.
우아한 벨벳 의자에 앉아 사과 슈트루델을 한입 베어 물면, 고급스럽고 쓸쓸한 크루얼 인텐션의 기류가 입 안에 맴돕니다. 창밖에는 센트럴파크가 있고, 안에는 진중한 대화와 클래식 음악이 흐릅니다. 여긴 정말 캐서린이 단골이었을 법한 공간입니다.

브루클린 덤보 지역의 카페들도 좋습니다. ‘Butler’ 같은 곳은 좀 더 현대적이지만, 영화의 리메이크판이 나온다면 여기서 촬영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좋습니다.
벽돌 벽, 빈티지 러그, 디저트 쇼케이스. 크루얼 인텐션의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숙소 선택, 그리고 그 분위기를 지켜내는 법

이 영화는 감정이 무너질 듯 고요한 공간에서 더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그래서 숙소 선택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무 호텔에서 자면 안 됩니다. 방에 들어섰을 때 캐서린이 앉아 있을 것 같은 느낌이어야 합니다. 리즈가 침대 모서리에 앉아, 조용히 무언가를 읽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

Tarrytown House Estate on the Hudson은 그런 조건을 충족합니다.
돌로 된 벽, 나무 계단, 넓은 정원. 낮에는 새소리만 들리고, 밤에는 작은 촛불처럼 창문 불빛만 보입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크루얼 인텐션이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공간으로 확장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The Marlton Hotel은 조금 더 도심적인 감성입니다. 클래식한 로비, 고풍스러운 벽난로, 레트로 느낌의 조명. 세련되면서도 빈티지한 매력이 있고, 그리니치 빌리지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와도 잘 어울립니다.

The Lowell Hotel은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촬영지와 가장 가까우며, 내부는 고급스러우면서도 따뜻합니다. 하얀 침구, 두꺼운 커튼, 조용한 복도. 이런 호텔에서는 굳이 뭘 하지 않아도 하루가 영화처럼 흘러갑니다.

예산은 다소 유동적입니다.
숙소는 1박 기준 $250~$500, 식비는 하루 $70~$100, 교통비와 입장료는 약 $40 내외입니다.
크루얼 인텐션이라는 영화의 무드를 따라간다는 점에서, 이 정도 투자는 아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이 비용이 여행의 깊이를 만들어 줍니다.

교통은 맨해튼 중심에서 Tarrytown까지 메트로노스 기차로 약 45분, 지하철과 메트로카드 7일권($34)을 활용하면 도심 이동도 효율적입니다.

결론: 당신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어떤 여행은 기억보다 감정으로 남습니다. 크루얼 인텐션을 따라간 이번 여행이 그랬습니다.
나는 단지 장소를 옮겨 다녔을 뿐인데, 그 장면들이 다시 내 안에서 재생되었고, 익숙한 얼굴들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촬영지에 앉아 있을 때, 카페에 들어섰을 때, 호텔 창밖을 바라볼 때마다 그 영화의 대사 하나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이런 감정이 있는 여행은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이 그 이야기를 다시 걷고 싶다면. 크루얼 인텐션이라는 기억을, 직접 체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