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정적을 걷다, 서울 속 '승부' 촬영지 여행
2023년 개봉한 영화 《승부》는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 한국 바둑사의 상징적인 두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조훈현 역의 이병헌과 이창호 역의 유아인은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바둑이라는 종목의 특성을, 절제된 감정 연기로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한 서울의 장소들은 그 자체로 영화의 감정을 대변합니다. 스승과 제자의 갈등, 존경, 교차하는 세대의 무게는 고요하고 묵직한 서울의 공간을 통해 더 뚜렷이 표현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속 주요 촬영지를 중심으로 서울 도심을 걷는 감성 여행을 제안하며, 각 장소에서의 감상 포인트, 인근 맛집과 카페, 추천 일정과 여행 경비까지 하나하나 소개해드립니다.
바둑의 침묵이 머문 공간, 기원의 상징성
《승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스승과 제자가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순간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경기나 기술 대결이 아닌, 서로의 삶과 감정을 조용히 마주 보는 시간이자, 시대가 바뀌는 순간의 함축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위해 '기원'이라는 공간을 특별하게 연출했습니다.
실제 조훈현 9단은 서울 종로구 필운동과 인사동 인근에 위치한 바둑도장에서 이창호 9단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을 지도했습니다. 전통 한옥 구조의 그 공간은 바둑이라는 종목의 철학—고요함, 집중, 내면의 확장—과 잘 맞아떨어지는 장소였고, 영화에서도 이를 살리기 위해 북촌 한옥마을 일대의 고즈넉한 한옥을 주요 배경으로 삼아 기원의 정서를 재현했습니다.
감독은 "기원은 인간관계의 깊이를 보여주는 감정의 무대"라고 설명했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도 배우들의 눈빛과 공간의 침묵만으로 관객의 숨을 멈추게 하는 장면이 완성된 배경에는 서울 한복판의 조용한 골목들이 있었습니다.
주요 촬영지 4곳 소개 – 영화 속 서울을 걷다
1. 덕수궁 돌담길
영화 속 조훈현이 홀로 걷는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말없이 돌담을 따라 걷는 그의 뒷모습은 그가 짊어진 무게, 스승으로서의 책임, 세대교체의 씁쓸함을 조용히 표현합니다. 이 길은 서울에서 가장 클래식한 산책로 중 하나로, 실제로도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며 깊은 감성을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즐기는 법: 아침 시간대, 인파가 없을 때 혼자 걷는 걸 추천합니다. 덕수궁의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전통 건물들과 느티나무 그늘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영화 속 감정선을 되새기기에 안성맞춤입니다.
2. 정동길 & 서울시립미술관 앞
정동길은 서울 근대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거리로, 석조전, 붉은 벽돌 교회, 외국 공관 등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영화에서는 이창호의 회상 장면과 성장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감정 변화의 흐름을 공간적으로 표현합니다. 시립미술관 앞의 넓은 광장과 건물 외벽은 스승과 제자의 시선이 잠시 교차하는 장면에 사용되었습니다.
즐기는 법: 정동길을 천천히 걸으며 골목에 숨어 있는 독립서점이나 소극장, 그리고 클래식한 외국 건물들을 관찰해 보세요. 영화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볼 수 있는 포토 스폿도 많아 사진 촬영지로도 제격입니다.
3. 을지로 세운상가 & 뒷골목
바둑계의 현실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좁은 철제 계단, 낡은 간판, 오래된 인쇄소가 밀집된 을지로 골목은 영화 속에서 이창호가 바둑계의 냉혹한 현실을 체감하는 무대로 쓰입니다. 도시적인 회색 배경이 인물의 복잡한 내면과 묘하게 어우러지며 극적인 효과를 냅니다.
즐기는 법: ‘세운 옥상’ 전망대에 올라 서울 전경을 감상하고, 아래로 내려와 빈티지 숍이나 공방, 골목 감성 카페들을 들러보세요. 영화 속 장면처럼 흑백 사진을 찍으면 아주 분위기 있는 결과물이 나옵니다.
4. 북촌 한옥마을
실제 조훈현의 기원을 모티브로 삼아 촬영된 장면의 중심 배경입니다. 영화에서는 바둑을 두는 장면뿐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에서도 북촌 특유의 한옥 골목이 사용됩니다. 기와지붕, 대문 너머의 정원, 나무창살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긴장감은 영화의 핵심 분위기를 결정짓는 요소입니다.
즐기는 법: 북촌 8경을 따라 산책하며 한옥 카페나 바둑 관련 소품샵을 들러보세요. 전통차 한 잔과 함께 바둑판이 놓인 테이블에서 여운을 즐기면 영화 속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감성 충전! 인근 맛집과 카페 추천
영화 속 감정을 따라 걷는 여정이라면, 그 감정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공간도 중요합니다. 촬영지 인근에는 여운을 이어갈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맛집이 많습니다.
정동 1928 아트카페는 구세군 역사건물을 개조한 클래식한 카페로, 내부에는 고풍스러운 가구와 클래식 음악이 흐르며, 덕수궁 돌담길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자리는 영화 장면의 감성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덕수궁 뜰은 한옥을 개조한 브런치 카페로, 된장 리소토, 전통차 세트 등 담백하고 건강한 메뉴들이 많습니다. 조용한 정원 풍경과 함께 여운을 정리하기에 좋습니다.
커피한약방은 세운상가 인근에 위치한 대표 감성 카페입니다. 어두운 조명과 고전적인 인테리어, 그리고 깊은 향의 한방차와 핸드드립 커피는 영화 속 기원의 정적을 다시 떠오르게 합니다.
청계면옥과 을지OB베어는 오래된 노포식당으로, 평양냉면이나 맥주 한 잔과 함께 서울의 오래된 감성을 맛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하루의 마무리를 하기에 딱 좋습니다.
하루 여행 일정 & 예상 경비
추천 일정
- 10:00 덕수궁 돌담길 산책
- 11:00 정동 1928 아트카페 브런치
- 12:30 정동길과 서울시립미술관 앞 포토타임
- 14:00 을지로 세운상가 및 골목 탐방
- 15:30 커피한약방에서 커피 타임
- 17:00 북촌 한옥마을 기원 배경지 걷기
- 18:30 청계면옥 또는 을지 OB베어에서 저녁 식사
- 20:00 귀가
예상 경비 (1인 기준)
- 교통비: 5,000원
- 식사 2회: 약 25,000원
- 카페 2회: 약 12,000원
- 기타 간식/기념품: 10,000원
- 총합계: 약 52,000원 ~ 60,000원
결론 – 바둑처럼 고요하고 깊은 하루를 걷다
영화 《승부》는 한 판의 바둑을 인생에 비유하며, 말보다는 침묵, 격정보다는 시선으로 깊은 감정을 전달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완성한 서울의 공간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바둑판처럼 사방이 열려 있지만, 그 속에 담긴 규칙과 철학을 체험하고 싶다면 지금 이 촬영지 여행을 떠나보세요. 서울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조용하지만 강렬한 하루, 그 시간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