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개봉한 영화 인페르노(Inferno)는 댄 브라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상징학 교수 로버트 랭던이 어느 날 피렌체 병원에서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나며 시작되며, 그는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끊임없이 자신을 쫓는 조직과 마주하게 됩니다. 문명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인류의 과거 속 단서를 추적하며, 이탈리아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거쳐 마침내 영화의 결말은 터키 이스탄불에서 펼쳐집니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장소는 세계적인 유산인 아야 소피아와 바실리카 저수지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그 장면들을 따라, 실제 이스탄불의 명소를 여행하는 감성 루트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야 소피아 – 종교와 역사의 교차로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마지막 실마리를 찾기 위해 찾는 장소가 바로 아야 소피아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동서양 문명의 상징이자 기독교와 이슬람, 제국과 세속 정치가 교차한 거대한 문화의 경계선입니다.
537년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대성당으로 건축된 아야 소피아는, 천년 가까이 기독교 세계의 중심지로 기능하다가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점령 후 이슬람 사원으로 전환됩니다. 20세기 초 세속화 정책에 따라 박물관으로 운영되었으나, 최근 다시 모스크로 지정되어 현재는 종교적 기능을 겸한 복합 공간이 되었습니다.
내부로 들어서면 돔 천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며, 그 안에는 기독교 성상과 이슬람 서예가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인물상이 제거된 벽면 위로는 여전히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흔적이 남아 있고, 커다란 샹들리에와 미흐라브(기도 방향을 가리키는 틈)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는 장면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경외감을 자아냅니다.
영화에서 아야 소피아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인류가 지나온 길’의 메타포로 작동합니다. 역사의 축적, 문명의 충돌, 종교의 공존이 그 안에서 시각화되어, 관람자에게 거대한 서사를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입장료는 약 25~30리라이며, 기도 시간에는 비무슬림 입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혼잡한 시즌에는 아침 일찍 방문하거나 온라인 예약을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실리카 저수지 – 메두사의 얼굴이 잠든 미로
아야 소피아 인근 지하에는 영화의 마지막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리는 장소, 바실리카 저수지(Yerebatan Sarnıcı)가 있습니다. 이곳은 6세기 동로마 제국 시기 물 저장소로 건축된 유적이며, 현재까지도 수백 개의 대리석 기둥이 물 위에 반사되는 환상적인 풍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바실리카 저수지의 가장 유명한 지점은 ‘메두사의 기둥’입니다. 기둥의 받침대로 사용된 메두사의 얼굴 석상은 한 개는 거꾸로, 또 하나는 옆으로 눕혀져 있어 그 이유를 두고 여러 해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고대 로마 신화의 상징을 억제하거나 눈을 맞추면 돌이 된다는 전설을 피하기 위한 배치라고도 전해지며, 이곳을 더욱 신비롭고 미스터리하게 만듭니다.
영화 인페르노에서는 이 저수지에서 마지막 바이러스 봉투가 터지는 위기 상황이 연출되며, 숨 막히는 클라이맥스가 펼쳐집니다. 영화 속처럼 어두운 기둥 사이를 누비다 보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이야기 속을 걷고 있는’ 체험이 됩니다.
입장료는 약 30~50리라이며, 내부가 어둡고 습한 편이므로 미끄럼 방지 신발을 권장합니다. 최근 리노베이션을 거쳐 내부 조명이 다양하게 연출되고 있으며, 사진 촬영 포인트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촬영지로서의 이스탄불 – 인문학의 무대
이스탄불은 단순히 영화 배경지가 아닙니다. 이곳은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오스만 제국을 아우르는 문명의 핵심지로, 정치·종교·철학이 켜켜이 쌓인 도시입니다. 영화 인페르노가 마지막 배경지를 이스탄불로 설정한 것도 단순한 풍경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상징성 때문입니다.
로버트 랭던은 단서를 쫓는 동시에, 인류 문명이 남긴 철학과 흔적을 따라갑니다. 그가 건물 안을 뛰어다닐 때, 우리는 단순한 추격이 아니라 역사와 철학 속을 달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이는 단순한 액션 영화와는 전혀 다른 깊이감을 부여하며,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무게감을 더욱 강조합니다.
실제로 이스탄불의 거리를 걷다 보면 현대 도시와 중세 건축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장면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한 블록 옆으로만 돌아가도 예배당, 모스크, 현대 상업 지구가 순식간에 교차하며, 이질감 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랜드 바자르와 톱카프 궁전 – 이스탄불의 또 다른 얼굴
영화에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이스탄불을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두 명소가 있습니다. 바로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와 톱카프 궁전(Topkapi Palace)입니다.
그랜드 바자르는 약 4천 개 이상의 상점이 연결되어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시장입니다. 양탄자, 도자기, 전통 조명, 차와 향신료, 수공예품 등 다양한 품목이 가득하며, 길을 걷는 것 자체가 마치 미로를 걷는 듯한 경험을 줍니다. 이곳에서는 흥정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관광객과 상인 사이의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스탄불만의 활력을 만들어냅니다.
한편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 술탄의 궁전으로, 정교한 궁정 건축과 이슬람 유물, 보석 전시관, 넓은 정원이 인상적입니다. 아야 소피아에서 도보 10분 거리로, 두 곳을 연계해 관람하면 역사적 연속성을 체감하기에 적절합니다. 특히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에서는 마르마라 해와 보스포루스 해협의 풍경이 어우러지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 두 장소는 이스탄불의 ‘삶의 면’과 ‘권력의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단면입니다. 영화 속 이스탄불이 ‘위기와 상징의 무대’였다면, 여행자의 시선에서는 ‘문화와 일상의 파노라마’로도 기능합니다.
결론 – 단서를 따라, 나만의 인페르노를 걷다
영화 인페르노는 추적과 위기의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인류가 지나온 문명과 철학, 신념의 갈등과 공존이라는 복잡한 주제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현실에서 체험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이스탄불입니다.
아야 소피아의 둥근 천장을 올려다보고, 바실리카 저수지의 어두운 기둥 숲을 걸으며, 그랜드 바자르의 복잡한 골목길 속에서 향신료 냄새에 취해보세요. 이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시간과 이야기의 겹 속을 직접 체험하는 감정적 여정입니다.
당신만의 단서를 따라, 나만의 인페르노를 걷는 여행. 이제 그 여정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