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은 201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휩쓸며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입니다. 그 성공의 배경에는 단순히 탄탄한 서사뿐만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의 현실적 풍경을 치밀하게 활용한 ‘로케이션’이 있었습니다. 특히 남산동, 종로구, 서촌, 청운동, 효자동 일대는 영화의 상징적 배경으로 등장하며, 극 중 인물들의 계급, 공간, 감정의 이동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주요 무대가 됩니다. 이 글에서는 기생충의 주요 촬영지들을 하루 코스로 따라가며, 영화 속 분위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동선과 함께 인근의 볼거리, 감성 카페, 로컬 음식점, 마켓까지 연결하여 여행자에게 실질적인 가이드가 되도록 구성했습니다. 서울을 보다 깊이 있게 느끼고 싶은 분, 영화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꼭 한번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남산동 반지하 골목 – 영화의 출발점이자 현실의 단면
기생충의 서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은 단연 기택 가족의 반지하 집입니다. 현실적 빈곤과 사회적 단절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이 공간은 서울 남산동 일대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남산타운 아파트 뒤편의 골목은 실제로도 오래된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반지하 주거지 특유의 침침한 분위기와 좁은 골목의 폐쇄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영화 속 반지하 집은 현재 철거되어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그 골목은 영화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어 많은 팬들이 사진 촬영이나 산책을 위해 방문합니다. 실제로 이곳을 걷다 보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질 때 흙탕물이 골목을 휩쓸며 반지하로 들어오는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를 만큼 사실적인 공간감이 느껴집니다. 이곳에서는 남산도서관, 백범광장공원 등을 함께 방문하면 잠시 휴식을 취하기 좋고, 근처의 ‘남산돈까스 거리’에서는 서울의 오래된 맛집 문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명동돈까스’, ‘왕돈까스집’ 등은 정통 돈까스를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어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입니다. 또한 도보 10~15분 거리의 한옥 스타일 북카페에서는 영화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조용히 책을 읽거나 커피를 즐기기에 좋습니다. 첫 코스로 남산동을 거쳐 시작하는 기생충 여행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 도시의 어두운 단면을 체험하며 여정을 시작하기에 완벽한 장소입니다.
서촌 자하문길 – 영화적 이상과 여유가 깃든 공간
남산동에서 택시나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을 이용해 서촌으로 이동하면, 기생충 속 박사장 가족의 고급스러운 생활을 떠오르게 하는 또 다른 공간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실제 박사장 가족의 저택은 세트장이었지만, 그 공간이 지닌 여유로움과 정갈함, 계급적 단절의 이미지는 서촌의 자하문길과 매우 유사합니다. 자하문로7길, 효자동길, 자하문로16길 등 서촌 일대 골목은 고급 주택가와 전통 한옥이 조화를 이루며 걷기 좋은 산책길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곳곳에 숨겨진 카페와 아틀리에, 갤러리가 존재하여 문화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영화 속 고요한 분위기를 재현합니다. 특히 ‘피크 커피’, ‘펠앤콜’, ‘온더코너’ 같은 감성 카페는 인스타 감성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도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이곳에서 기생충 속 박사장 부인의 공간처럼 단정하고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말마다 열리는 서촌 마켓에서는 수공예품, 제로 웨이스트 상품, 지역 농산물 등을 구매할 수 있어 관광지 이상의 실용적인 방문지가 됩니다. 자하문길 끝자락에서는 인왕산 자락이 보이며, 도심 속 자연 풍경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영화 속 장면이 현실에 스며드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서촌은 기생충이 보여주고자 했던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그들이 가진 삶의 여백을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소이며, 기택 가족이 절대 가질 수 없었던 공간에 직접 서 보는 체험적 의미를 지닙니다.
청운동~효자동 골목 – 조용한 사색의 마무리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은 기우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상상 속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장면은 현실이 아닌 환상의 가능성, 그러나 실현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배경은 청운동과 효자동의 고요한 언덕길과 이어져 있습니다. 청운동은 경복궁 뒤편의 전통 주택가로, 현재는 일부 청와대 공간이 개방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효자동과 함께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어, 하루의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입니다. 특히 ‘청와대 사랑채’, ‘춘추관’, ‘경복궁 별궁지’ 등은 역사적인 장소로도 볼 수 있으며, 최근에는 야간 개장 행사나 문화 전시도 자주 열려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풍부한 체험이 가능합니다. 이 지역의 전통 찻집 ‘수연산방’, 빈티지 갤러리 카페 ‘사루비아다방’, 북카페 ‘오운커피’ 등은 공간의 정적과 깊이를 함께 전달하며 기생충이 남긴 여운을 정리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조용히 차를 마시며, 영화 속 계층 간 벽, 가족의 해체, 도시의 구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마지막으로 청운동 언덕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영화 속 기우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회상해 보면 그 메시지가 훨씬 더 생생히 와닿습니다. 현실에서의 가능성과 불가능, 도시의 공간이 만들어내는 계급이라는 개념이 그 언덕길 위에서 천천히 정리될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은 단순한 스토리를 넘어 도시 서울이 가진 이면을 로케이션으로 녹여낸 작품입니다. 남산동의 반지하 골목에서 출발해 서촌의 자하문길을 지나 청운동과 효자동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동선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입체적 풍경과 영화 속 의미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여행 코스입니다. 서울의 고층 건물과 전통 골목길 사이,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내면엔 거대한 격차를 품은 공간에서 우리는 영화 속 장면처럼 삶의 여러 층위를 만나게 됩니다. 기생충의 여운을 직접 걸으며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이 로케이션 코스를 꼭 한번 따라가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닌 영화와 도시를 함께 읽는 깊이 있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