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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펀 골목 투어 , 영화 비정성시의 흔적

by 아이디어팝 2025. 6. 1.

지우펀 이미지
지우펀 이미지

 

1989년 후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비정성시(A City of Sadness)'는 대만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 영화이자, 대만 영화사상 최초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방식으로, 대만 사회의 정치적 억압과 정체성 혼란, 가족의 해체를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주요 촬영지인 '지우펀(九份)'은 그 자체로 역사와 기억이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폐광촌이던 이 마을은 영화 이후 재조명되며 대만 최고의 감성 여행지로 떠올랐습니다. 지우펀과 그 너머, 비정성시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시간과 감정을 걷는 여정이 됩니다.

1. 비정성시, 대만 현대사의 고요한 절규

‘비정성시’는 1947년 대만에서 발생한 ‘2.28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는 일본의 식민 지배가 끝난 뒤 국민당 정부가 본토에서 들어오면서 발생한 대만 내부의 갈등이 폭발한 사건입니다. 타이베이에서 시작된 시민과 정부 간 충돌은 곧 전국적인 무력 진압으로 번졌고, 수많은 민간인이 체포, 고문, 처형당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수십 년간의 백색테러 시기가 이어졌고, 언론의 자유는 물론 일상적인 대화조차 감시받는 공포의 시대가 펼쳐졌습니다.

영화는 네 형제의 가족사를 통해 그 시대의 공기를 섬세하게 그립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가족 구성원, 대만어와 북경어, 일본어가 혼용되는 혼란한 언어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말하지 않는 주인공 ‘원천’의 침묵은 시대의 억압을 상징적으로 대변합니다. 그는 청각장애인이지만 사진사로서 시대를 기록하며, 비극을 말이 아닌 이미지로 남기는 인물이죠. 후샤오시엔 감독은 감정의 과잉보다 여백과 정적을 통해 시대의 무게를 담아냅니다.

2. 지우펀, 왜 이곳이었나

지우펀은 타이베이에서 동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산악 지대에 위치한 옛 금광 마을입니다. 일본 통치기 시절 금광 산업으로 한때는 수만 명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던 번화한 지역이었지만, 1970년대 폐광 이후 급속히 쇠퇴해 인구는 2,000명 이하로 줄고, 마을은 침묵과 안개에 휩싸인 곳이 되었습니다.

후샤오시엔 감독은 이 마을의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에 주목했습니다. 돌계단, 붉은 등불, 전통 찻집, 폐광터 등은 영화 속 등장인물의 고독과 억압된 감정을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셔우핑극장(昇平戲院), 골목 계단, 옛 민가 등에서 촬영되었으며, 그 장소들은 오늘날까지 원형 그대로 남아 관광객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3. 지우펀 골목 곳곳, 영화의 장면들

셔우핑극장은 대만 최초의 근대식 영화관 중 하나로, 영화 속 가족이 함께 모이는 장면의 배경입니다. 현재는 복원되어 작은 박물관으로 운영되며, 당시 사용된 필름, 포스터, 장비 등을 전시하고 있어 영화 팬이라면 꼭 들러야 할 장소입니다.

지우펀 올드 스트리트는 좁고 복잡한 골목길로, 영화 속 장례 행렬, 형제들의 갈등 장면 등 다양한 씬이 이곳에서 촬영되었습니다. 특히 영화의 톤과 맞아떨어지는 흐린 날씨와 붉은 조명은 실제 풍경과 영화 속 이미지가 완벽히 겹쳐지게 만듭니다.

아메이찻집(阿妹茶樓)은 영화 촬영지는 아니지만, 그 분위기와 구조로 인해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인상을 주며,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서 전통 차와 디저트를 즐기며 사진을 남깁니다.

4. 비정성시, 지우펀 너머의 촬영지들

영화는 지우펀뿐만 아니라 여러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지역이 진과스, 루이팡, 타이베이입니다.

진과스(金瓜石)는 지우펀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 또 다른 옛 광산 마을로, 영화 속 광산, 병사 감시 장면, 감옥 장면 등이 촬영된 곳입니다. 현재는 황금박물관과 옛 감옥터, 군사 터널이 보존되어 있으며, 지우펀과 함께 역사 관광 코스로 묶어볼 수 있습니다.

루이팡(瑞芳)은 지우펀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마을입니다. 영화 속 시장과 기차역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으며, 지금도 오래된 역 건물과 전통 시장 골목이 남아 있어 과거의 흔적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타이베이에서는 병원, 경찰서, 신문사 등의 도시적 장면이 촬영되었습니다. 특히 중정기념당 인근이나 옛 행정 건물들은 영화의 시대감을 연출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5. 지우펀 여행 실전 팁 (교통, 숙소, 계절, 준비물)

- 타이베이역 → 루이팡역 (TRA 기차) → 788번 버스 또는 택시로 지우펀 이동 (총 약 1시간 30분 소요)
- 타이베이 시내버스터미널에서 1062번 버스 이용 시 직행 가능 (40~50분 소요)

- 지우펀 내 민박이나 게스트하우스는 전망 좋은 곳이 인기 많으며, 야경과 붉은 등불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분위기를 제공합니다.
- 숙소 가격대는 NT$1,200~2,500 (한화 약 6~12만 원)

- 계절별 팁:
봄(3~4월): 여행객 적고 맑은 날 많음
가을(10~11월): 안개, 단풍, 조명 어우러져 가장 아름다움
여름: 더위, 습기, 소나기 많음
겨울: 비 잦고 축축한 날씨

- 여행자 팁:
돌계단과 비탈길 많으므로 미끄럼 방지 신발 필수
상점은 저녁 6시 이전에 대부분 문 닫음
EasyCard로 대중교통 결제 가능

6. 지우펀 먹거리와 주변 투어 코스

대표 간식은 타로볼 디저트(芋圓)입니다. 고구마, 타로, 녹두 등 다양한 맛이 있으며, 뜨겁거나 차갑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인기 가게로는 ‘라이라이’, ‘아메이차’, ‘진즈차이’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땅콩아이스크림, 어묵튀김, 기름국수, 간장계란 간식 등 골목마다 다양한 먹거리가 있어 여행의 재미를 더합니다. 전통 찻집에서 차와 디저트를 곁들여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주변 관광지로는 진과스 금광박물관, 스펀 천등 마을, 허우퉁 고양이 마을 등이 있으며, 지우펀과 연계한 당일 코스로 적합합니다.

7. 지우펀, 문학과 예술 속에서

지우펀은 대만 문학과 예술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과거를 간직한 낡은 마을, 흐릿한 안개, 느린 시간의 흐름은 많은 시인과 사진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시인 양무창은 지우펀을 “잊혀진 시간의 기억 창고”라 칭하며, 대만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학적 은유로 활용했습니다.

결론 – 영화를 따라 걷는 인문학 여행

비정성시는 정치 영화도, 가족 드라마도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가 개인에게 남긴 상처와 침묵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기록한 예술 작품입니다. 지우펀은 그 기억을 머금고 조용히 살아가는 마을입니다.

이곳을 걷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한 시대를 함께 체험하는 인문학적 여정입니다.
돌계단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침묵이 내 마음에도 울려 퍼질 것입니다.